외대석좌교수< 이문열>님의 <인터넷 집단 지성> 비판에 대해서
다음 아고라에 경제 토론방에 아침에 올라왔던글인데
너무 공감가는 이야기를 풀어놓은지라 갈무리해 걸어둔다. 낄낄
----------------------------------------------------------------------------
외대 석좌교수 <이문열>선생이 “인터넷 광장에서 오해와 착시를 활용한 여론 조작과 다수 위장은 ‘집단지성’이란 허구를 만들어 냈다. 감각으로 수용한 정보의 파편들을 지성으로 착각한 사팔뜨기 지식인들은 대의 민주정의 폐지까지 공공연히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 말한 것에 대해서 그것은 이문열의 인터넷 시대와 인터넷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식과 몰지각을 들어낸 것이라고 나는 비판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보기술총책임자로 (Information Technology Officer) 워싱턴 DC IT 책임자인 35세의 젊은 인도출신 정보기술 전문가인 Vivek Kundra를 임명할 것이라고 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정보기술 최고책임자는 CIO (Chief Information Officer) 까지 책임지는 정보 기술 최고 책임자이다. 청와대 박형준 홍보기획관의 위치 이상인데 청와대의 정보 기술 (IT) 정보 소통의 미흡함을 백악관 정책과 비교 분석하여 지적하는 글을 따로 올리겠다.
쿤드라는 오픈 데이타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국민과 정책담당자(정치인) 기업을 하나로 묶어 정보 소통이 원활하도록 하는 그의 open data 접근 방침은 현 청와대의 수준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데이타 피드, 비디오, 토론게시판, 위키 등 집단적 정보 기술 collective technology정보 소통을 이해하기 위한 쿤드라의 e-government 프로그램 바로가기.
대표적인 ‘보수 지성’으로 꼽히는 소설가 이문열 외대 석좌교수님이 그렇게 천박한 인식을 하고 있음을 볼 때 뉴라이트 수구꼴통들이 얼마나 시대에 뒤처진 초라한 몰골인지는 안봐도 비디오이다.
시각이 꼴통이면 진단도 꼴통일 수 밖에 없다.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그대로 나오는 것처럼.(garbage in garbage out).
이문열교수님은 “인터넷 광장의 착시현상은 소수를 다수로 보이게 하고, 익명성 뒤에 숨은 조작은 터무니없는 소수에게 대표성을 안겨주어 다수로 혼동하게 만든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나의 비판을 보다 상세히 설명해 본다.
온라인 인터넷은 완전한 공간이 아니다. 완전무결한 네트워크가 아니다. 네트워크는 불안하다. 스펨메일이 끊이없이 발생하고 사생활정보 노출 해킹 인터넷 사고와 온라인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프라인 우리 삶도 마찬가지고 완전하지 않다. 인간의 삶에는 성경시대 즉 태초부터 살인이 존재했고 살인범죄자는 사형제도로 극형으로 다뤄왔지만 인간세상에서 살인사건 도둑질등 범죄는 한시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오프라인 현실에서 흔히 일어나는 범죄이다. 인터넷 시대에 부정적으로 생겨난 특수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메일 인터넷 뱅킹 전자상거래 위키백과 블로그 포털 메신저 현재 생황에 필수불가능한 순기능을 착실히 담당하고 잇는 것이 인터넷 시대이다. 소비자가 원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인터넷 뱅킹이 안되는 세상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메일 메신저가 없이 학교생활도 못하고 회사업무도 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시대에 뒤처지는 현상 때문에 이문열 교수님처럼 인터넷문화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은 개방성이 생명이다. 개방성이 완전무결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가 공개되면서 정보를 검증하는 기회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논문조작 <황우석> 사태 때 <브릭스>의 집단 검증 능력 <쇠고기 촛불사태> 때 집단 검증 능력의 수확은 인터넷의 집단지성의 우수성을 대표적인 증명하는 대사건이다.
인터넷의 <개방성>으로 인해서 그동안 정보를 독점하며 거짓된 정보로 세상을 왜곡하고 국민의 눈을 속이고 귀를 어지렵히며 나라와 국민의 발목을 잡던 <조/중/동> 재벌 카르텔 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지금까지 소수 지배권력의 정보조작에 당할 수 밖에 없었던 피지배층 서민과 대중과 천민과 민중은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정확한 데이타에 따른 정보 분석과 판단의 기회를 가지고 됨으로써 새로운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열어갈 수 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문열의 비난 반응은 반사적 자기 이익보호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누구도 홀로 살아 떨어져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외딴 섬>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 같은 사람은 없다. 뉴욕에서 상하이 까지 모스크바에서 서울까지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는 <관계의 세상> 이 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오늘 날 새상은 <네트워크> 으로 통해 연결된 세상이다.
경제도 정치도 모두 함께 연결되어 있는 돌아가는 새로운 세상에 우리는 살아 가고 있다.
아고라 같이 데이타가 모이면 토론으로 새로운 분석과 해석을 모아 가며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 집단적 지성의 힘이다. 공동적 가치는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선을 추구하는 힘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세탁기과 전기접시닦기의 등장으로 여성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됨으로서 새로운 고용 노동시장을 형성해 낸 것 처럼 기술 발전은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가져온 촉매작용을 한 것이다.
촛불사태 등은 국가적 위기사태를 맞이하고도 무감각한 권력상층부를 탄핵한 사건이며 그것은 아고라의 <사회적 현상> (social process) 이고 사회적 의도 (social purpose) 이었던 사건이다.
디지탈 시대에 디지탈식 표현이었던 것이다.
미네르바 사건도 10월 주가 대폭락이 일어난 특수한 사회적 현상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리만 부라더스 파산으로 결정적인 현상이 없었다면 미네르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네르바>의 비관적인 전망에 호응한 것은 아고라 집단적 지성이 작용한 결과이다.
아고라의 힘 즉 토론장이 아니었다면 미네르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퍼고 나르고 클릭하고 이어주기 없이는 즉 한 개인 능력으로서는 스타가 나올 수가 없다. <시대정신> 과 <공황> 등을 따르는 세력 등 뿐만 아니라 <주가폭락사태>를 외치던 <외신>의 정보등이 노아의 홍수처럼 정보가 범람하고 데이타 분석이 가능하게 된 인터넷위 혜택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미국의 카트리나 태풍 피해 현장과 같이 외환 위기가 닥쳐도 위정자가 인지하지 못한 사태의 심각성을 깨우친 것이 아고라의 집단지성의 힘이다. 태풍 카트리나가 루지애지나 도시를 휩쓸고 강둑이 터지고 난리가 나도 부시 대통령은 태연히 휴가를 즐기던 국가적 재난 사태하고 똑 같이 우리나라 위정자들은 대처능력이 극히 부실했다. 청와대에선 리만 부라더스 인수 건을 검토하는 등 강만수 장관등은 사태의 위급성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지난 9월 외환 위기 사태이다.
FTA 방향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사태가 터져도 리플효과에 무감각한 권력상층부를 탄핵한 아고라의 촛불사태가 <사회적 현상> (social process) 이고 사회적 의도 (social purpose)인 것과 같이 미네르바 사건도 사회적현상이고 사회적 의도였던 것이다.
집단적 지성은 데이타 검증 능력과 승수 (multiplier) 효과의 가공할 만한 큰 위력을 발휘하는 장점이 있다.
이문열교수님이 말한바 “인터넷 광장의 착시현상은 소수를 다수로 보이게 하고, 익명성 뒤에 숨은 조작은 터무니없는 소수에게 대표성을 안겨주어 다수로 혼동하게 만든다”는 말은 조합과 순열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터넷의 문화를 감지하지 못한 이문열 님 자신이 착시현상에 빠진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근대경제는 익명성에 기반한다는 것은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상세히 밝힌 내용이다.
아담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높은 생산성은 익명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파악했다. 통제 없는 시장, 낮은 노동비용, 높은 생산성등은 모두가 얼굴을 모르는 사람의 이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한 곳에 얽매여 살며 평생 얼굴을 아는 사람만으로 이뤼지던 중세사회에서 벗어나 서로 얼굴을 모르고서도 경제활동을 아무런 지장 없이 할 수 있고 더구나 <국가적 부>는 그러한 익명적 거래로 인해서 가능하다는 위대한 <익명성>의 경제를 발견해 낸 위대한 경제학자가 아담 스미스이다.
소비자가 누가 무슨 목적으로 물건을 거래하는지 상대방의 정보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거래에서 상대방의 목적은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아담 스미스는 발견해 낸 것입니다. 상대방 마음은 알 수도 없는 것이기에 오로지 내가 추구하는 내 이익추구 활동이 정당하다고 밝힌 것이다.. 인터넷 문화란 바로 이와 같다. 얽매어 있던 기존 질서를 타파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고 보고 관세니 가격통제니 임금억제니 독점이니 허가나 도제등 모든 기존 얽매인 질서를 타파해야 된다고 부르짖었던 아담 스미스와 같이 모든 차별적 닫힌 기존질서를 배격하고 열린 공간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인터넷 세대이다.
인터넷 세대는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프로수머 <Prosumers>이다.
인터넷 세대는 신문이나 광고를 그저 그대로 믿지 않는다. 물건 하나를 살 때라도 하다못해 검색이라는 것을 해보고 아니면 최소한 동료네티즌의 의견을 참조한다. 과거의 소비자 불매운동하고는 격이 다르기에 롯데등의 불매운동이 안이한 대처를 하다간 큰 코를 닥치게 될 것이다.
비디오동영상/대시보드/ 게시판/ 블로그/ podcast 등 다양하다. 디지탈 시대의 네티즌은 수동적으로 단순히 정보를 읽고 듣고 보고 있지만 않는다. 수동적으로 서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료처럼 정보와 의견을 나누고 그러면서 서로 사귀고 서로 협력해 나가는 것이 넷세대의 모습이다. 그리고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 토론 마당에서 보는 것처럼 지나가나가도 최소한 댓글을 하며 참여를 하는 것 즉 새로운 생성거리를 만드는 것이 인터넷세대이다. 그래서 인터넷은 정지된 명사가 아니가 움직이는 동사리고 위키 파운더는 말했다. 디지탈 세대는 참여하고 협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몸소 베어있다. 한꺼번에 인터넷 창을 다중으로 뛰우며 메신저도 하며 다른 업무도 훌륭히 할 수 있는 멀티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스피드/자유/ 공개/ 변혁/ 자유이동/ 자기독창성/ 재미나게 즐기는 것/ 등이 인터넷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들이다. Remix 는 카피가 아닌 팝문화이다.
사회 네트워크인 것이다. 린던의 Second Life는 매트릭스 영화나 마이스페이스나 ebay를 합쳐 놓은 것 같다.
이처럼 인터넷세대는 단순한 소비자가 더 이상 아니다. Consumer 라는 말은 그 어원이 쓰고 없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Con-sumere. 이제는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 같이 만들어낸다는 의미해서 consumer란 말 대신에 prosumer 란 말이 등장했다. (Producer + consumer=pro-sumer).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같이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고라 글은 단순한 한 개인의 소비행위가 아닌 것이다.
<디지탈 경제> <the digital economy> 라는 책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한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을 “presumption” 개념을 주창하며 잘 설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린던 랩의 <Second Life >가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오마이 뉴스등 시민 참여 저널이 확고히 자리잡은 것처럼 우리 모두가 미디어인 세상인 넷세상이다.
넷세대는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설정 모드 인 것이다.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우리 WE> 인 것이기에 우리는익명의 동료 anonymous fellow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 세대와 문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미국의 정보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쿤드라 와의 흐름(mashup era) 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 이문열은 시대의 지성에서 뒤처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문열 교수님은 <국민 통합>을 주장하는 데에 있어 국가와 국민과의 소통문제를 잘 못 이해하고 있다고 나는 비판한다.
국가는 국민에게 명령하는 개념이 아닌 봉사자의 개념이다. 국민의 신탁자라는 개념은 동양에선 뿌리깊은 정치적 모델이다. 단군 신화의 <홍익인간> 이란 개념 부터 맹자의 국가관은 영미법의 신탁자( trustee) 개념에 맞닿아있다. 국가는 국민의 <신탁자 관계>이기에 공자는 역성혁명의 가능성을 논한 것이다. 영미법도 부모와 자식 의사와 환자 관계처럼 신탁자는 특수관계이다. 국가는 그 의무는 다해야 한다. 국가가 신탁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국민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정당하다.
국가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봉사자 (servant) 관계이지 국민이 국가의 노예가 아니다. 이러한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대통령을 국민 선거로 뽑는다. 그리고 3권분립을 헌법으로 마련해 놓고 있으며 누구나 법앞에 평등하다고 법에 의한 통치를 요구한다. 공직자는 항상 감시를 받아야 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며 정보 공개 정보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는 장치를 두고 있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임으로 국가가 당연히 해야 될 국가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체크하고 감시기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감시기능을 위하여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즉시 공개할 의무가 국가에게 주어진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인터넷의 발전으로 해결되는데 MB정부는 정보기술과 정보 데이타의 소통 문제를 제댜로 이해못해서 촛불사태와 미네르바 사건에서 국민에게 패배하고 만 것이다.
국가는 법을 만들고 세금을 거두워서 국가예산을 집행한다. 그러나 이 2가지 기능만이 국가의 기능이 아니다. 홍익인간 정신이 말해주는 것처럼 국가의 기능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국민을 계도하는 것이다. 교육 사회 문화 등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욱 주요한 이유이다. 왜 국가가 의무 무상 교육을 실시하는가? 교육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투자 >개념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인적 자원이라고 표시하듯이 미래에 수익을 창출해 낼 <자산> 개념에 속하기 때문이다. 교육 문화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수익 개념이 아니다. 미래 세대를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문열 교수님은 18세기 낭만적/개인주의적 글쓰기의 낡은 사고개념에 얽매어 있고 가상 세계 (virtual reality)/ 디지탈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의 정보 공개와 국민의 정보 접근성의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국민 통합> 노력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과 올바른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